프로포즈이야기(사랑글귀) _ 연애는 환상, 결혼은 현실

제가 입학한 경영학과에는 여학생 비율이 거의 없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남자선배들에 환대를 받으며

즐겁게 학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2학년 여름방학,

이번에는 복학예정이라는 한 선배와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많은 수업을 같이 듣게 되다 보니

우리는 점점 편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는 수업이나 점심시간을 제외한 시간은

거의 도서관에만 있는 편이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진 못했지만

 특유의 농담과 직설적인 말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는 학기 초에 하도 예쁜 애들이 많다고 해서 완전 기대했는데..
 아~ 니네들 보고 깜짝 놀랐다. ㅎㅎ

 

 

음식점에 가도 여자 후배라고 좋은 자리,

맛있는 음식을 더 챙겨주는 일도 없었습니다.

 

여학생 수가 워낙 적은 곳이라

대부분은 여자라고 모든 행동에 구분을 뒀는데

그는 남학생과 별다름 없이 대해주니

저는 오히려 그게 더 좋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 있는데 그가 절 툭툭 쳤습니다.
 

 

야~ 우리 뽀뽀나 하러 갈래?

 

 

선배??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지금 뭐라고 했어요?

 

어?? 미안..

근데 뿅뿅하러 가면 안되는 거야?

지금 많이 바빠?

 

 

오락실에 게임하러 가자는 '뿅뿅'을

저 혼자 뽀뽀로 알아들은 겁니다.

그와 저 사이에는 이런 사소하면서도 한심한 에피소드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러다 기말고사가 있던 날,

그는 내일이 자기 생일이라며 단둘이 만나자며 연락을 해왔습니다.

 

한번도 남자선배와 일대일로 만난 적이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그와는 영화도 보고 산책도 하고

이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선배는 매일 이렇게 잘 놀면서..

왜 맨날 도서관에만 있어요?

 

 

어~ 나는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이라 돈을 잘 벌어야 해.
 내 손 좀 봐봐

딱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이라고 써있지 않아? ㅎㅎ

 

 

이러며 그는 제 손을 꼬옥 잡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캠퍼스 커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기숙사와 주로 도서관에서 생활을 해서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은 많지 않았습니다.

 

 

선배? 선배가 아무리 기숙사에 살아도
 한번쯤은 우리 집까지 나를 바래다 줘야 하지 않나요?

 그래도 명색이 내가 여친인데..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우리 집 앞까지 함께 걸어왔는데

그는 대문 앞에서 갈 생각을 안 하는 겁니다.

 

 

집까지 왔는데..

영화처럼 엔딩 키스도 해야지?

뭐야? 안 해준다고??
 너 다시는 나한테 바래다 달라고 하지마~

나 간다 >.<

 

 

그는 사귀는 내내 항상 이런 식이었지만

그래도 늘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좋았고

이후 6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말,

느닷없이 서울에 유명 호텔에서 보자는 연락을 해 왔습니다.

짠돌이가 웬일인가 싶었습니다.
 

나 너한테 청혼한다.
청혼할 때는 레스토랑 하나 빌려서 해야 한다고 했었지?
이 정도면 뭐..

하나 빌린 거랑 똑같지 않냐?

야~ 너 이렇게 좋은 호텔에서 청혼 받은 거야~

나 지금까지 너에게 다른 남자들처럼

하늘처럼 모시면서 연애하지는 않았어.
하늘에서 살다가 결혼해서 땅으로 내려오면 힘드니까.

그런데 난 결혼해서도 쭈욱~ 변함 없을 거야.
계속 지금처럼 사이 좋게 나랑 땅에서 같이 살자~

 

 

참으로 그 다운 프로포즈에 피식 웃음이 나는 동시에 가슴이 벅차 올랐습니다.

 

 

 

 

연애는 환상, 결혼은 현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만나는 동안

우리가 늙어 주름이 자글자글 해진 그때에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결혼 후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제 결정은 틀리지 않았단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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