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을 바꾸는 바람에
대학을 남들보다 오래 다녔던 저는
취직도 늦게 했습니다.
늦게 시작한 일이라 더 열심히 했고
그 안에서 성취감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스물 아홉이 되었고
제가 일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을 때,
친구들은 하나 둘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엄마의 잔소리는 어마어마하게 늘어났습니다.
너 아홉수야 아홉수~
너 그러다 시집 못 가면 엄마는 너랑 안 살 거야~
내가 너.. 나중에 서른 넘은 딸년한테 밥해서 바쳐야겠니?"
그덕에 저는 주말마다 소개팅이며 엄마가 해주는 선자리까지
정말 수없이 많은 남자들을 소개받고 다녔습니다.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뭐.. 드실래요?
아.. 저는 뭐 아무거나 다 잘 먹어요 ^^;
평소 전 오빠들 사이에서 자라 무척 왈가닥에 털털한 성격이었지만
이런 본성은 숨겨둔 채,
저는 조신하게 웃어야만 했습니다.
엄마가 조신하게 굴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으니까요.
하지만 몇 가지 의례적인 질문이 끝나면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정장치마는 또 왜 그리 어색하던지..
그래서인지 소개팅이 끝나고 애프터가 들어와도
제가 거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불편해서 더는 만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6개월간 의미 없는 시간을 보냈고
허탈감에 사로잡혔던 저는 어느 날 문득,
나는 왜 이렇게 억지 연기를 하고 있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엄마 등살에 떠밀려 선자리에 나가더라도
털털한 제 성격대로 이야기를 했고
대부분의 남자들은 이런 괄괄한 여자들은 처음이라는 듯
애프터 신청을 안 했습니다.
그러다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날은 토요일었지만 회사일 때문에 출근을 했다가
소개팅 장소로 바로 갔던 거라
청바지에 반팔티, 심지어 운동화를 신고 있었습니다.
어~ 진짜 편한 차림으로 오셨네요?
저도 그렇게 편하게 입고 올려다가..
억지로 양복 입었는데..
이거 너무 후회되는데요 ㅎㅎ
일단 식사 뭐로 하실래요?
아~ 오늘 너무 더워서,
그냥 이 앞에 냉면집은.. 좀 그런가요?
아.. 냉면??
예.. 저 냉면.. 좋아 합니다
대신 맛있는데 가서 커피는 드시죠 ^^
첫 만남에 빨갛고 매운 냉면을 먹은 뒤
우리는 땀을 삐질 삐질 흘리며 홍대거리를 걸었습니다.
이쪽에 제가 잘 아는 빙수집이 있거든요.
그런데 차를 너무 멀리 세웠나?
이렇게까지 먼 거리인줄은.. 몰랐네요^^;
다른 소개팅에서였다면 오늘처럼 땀으로 화장이 다 지워진
꾀죄죄한 모습 상상도 할 수 없었겠지만
이 남자와는 달랐습니다.
그 사람이 저를 창피해하지 않으니
저도 편하게 대할 수 있었고
그 더위 속에서도 대화는 술술 이어졌습니다.
소개팅 많이 안 하셨나 봐요?
저는 한달 전부터 주말마다 하고 있거든요.
말도 마세요~
저는 지금 반년 넘게 그러고 있는데..
짝 만나는 게 쉽지가 않죠?
저도 원래 그쪽처럼 정장입고 나왔었는데요,
그게 너무 제 체질이 아니라서..
그래서 그냥 제가 평소에 입는 대로 입고,
제 성격대로 말하고, 뭐..
그러고 있어요.
그랬더니 남자들이 아무도 애프터 신청을 안 해요.
뭐 이러다.. 어떻게든 되겠죠 ㅋㅋ
너무 솔직했나?
살짝 후회가 됐는데 그 다음날 이 남자가 꽃을 보낸 겁니다.
난생 처음으로 여자에게 꽃바구니 보내봅니다.
앞으로도 그 날처럼 억지로 멋 내지 않으셔도 되니까
편하게 저랑 만나주세요 ^^
저 역시, 처음 받아보는 꽃 선물.
감동의 크기는 어마 어마 했습니다.
정말로 그는 그날 이후
제 왈가닥 성격이나 보이시 한 옷 스타일도 모두다 예뻐해 주었습니다.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사람과 만날 때
사랑은 배가 되고 인연은 더 깊이, 더 오래 이어지는 법.
억지로 만들어낸 어색한 태도와 가면은 언젠가는 벗겨질 테고
그러면 사랑의 뿌리도 함께 흔들리게 될 테니까요.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던 이 사람과 저는
아직도 뜨겁게 사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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