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이야기(연애글귀) _ 우리는 비밀을 공유한 특별한 사이

그날 전 선배가 주선한 소개팅 약속을 잡고

역 앞 광장에서 최대한 도도한 척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서 한 남자가 화려한 점퍼에 모자까지 푹 눌러쓰고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설마 이 남자는 아니겠지' 했지만 그는 저를 향해 씨~익~ 웃어 보였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저는 나름 하이힐에 소개팅용 샤랄라 원피스도 구입했는데,

그는 이토록 추리한 차림이라니 정말 실망이었습니다.

 

그래도 주선자 오빠를 생각하며

밥이라도 먹고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헌데 그 남자는 당당하게 맛집 세 군데를 찾아 봤다며

첫 번째 장소인 회전초밥집을 가기 위해 앞장을 섰습니다.

하지만 그는 뭔가를 잘못 알고 왔는지

 

어?? 어?? 여기가 아닌가??

 

 라며 영혼 없는 웃음만 지어댔습니다.

 

보다 못한 제가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고

 이번에도 그는 당당히 앞장을 섰습니다.

 

음.. 오늘 이상하네요?

여기가 아닌가??
 어디지?

죄송해요^^;

 

찾아간 곳은 공사를 하고 있었고

식당의 흔적조차 없었습니다.

 

결국 우린 근처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서 밥을 먹었습니다.

 

첫인상은 정말 별로였지만 미리 맛집을 검색해오고

땀까지 삐질삐질 흘리며 애쓰는 그 모습에

제 마음이 조금씩 열렸습니다.

 

게다가 그는 생각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저와 자라온 환경도 비슷했습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를 만큼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다음 약속도 곧바로 잡았습니다.

 

이후로 우린 두 번을 더 만나며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소소한 데이트를 즐겼습니다.

 

소개팅으로 이렇게 좋은 사람을 만나다니 싶을 정도로

그에 대한 호감이 컸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 번에 만나기로 약속한 전날,

하루 종일 그와 연락이 안 되는 겁니다.

 

 

 

 

그리고 한밤중이나 돼서야 걸려온 전화.

 

 

전화했어?

미안해.. 바빴어.
 잠깐 서울에 볼 일도 있고.

 

 

왜 그래? 목소리가 안 좋은데,

무슨 일 있는 거야?

 

 

아니.. 그게..

사실.. 나.. 수술했어.

 

 

뭐? 어딜 다쳤는데?
 교통사고 난 거야?

 

아직 사귀는 단계도 아니고

썸을 타고 있는 단계였지만

전 그 사람이 그렇게 좋았는지

걱정된 마음을 확 표현해 버렸습니다.

 

아니 안 다쳤어

 사실.. 모발이식수술 했어

 

 

머리 숱이 별로 없는 그는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하고 싶었는데

하필 이 날짜에 약속이 잡히는 바람에

무리해서 모든걸 강행했던 겁니다.

 

알고 보니 그가 소개팅에 모자를 쓰고 나온 이유도

다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니가 너무 좋은데..

아직 사귀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런 수술한다고 말하면 내가 확 싫어질까 봐..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하필 수술 날짜가..

 

 

지금 나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거야?

 훗..ㅎㅎ

 

웃어서 미안한데..

난 왜 이렇게 귀엽지
 

그리고 스트레스 받지마

내가 약 발라 줄께
 

우리 언제 만날까?

 

 

모발이식을 계기로

엉겁결에 서로에 마음을 고백한 우리

 

그는 탑 시크릿을 털어놓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고 했고

저 역시 순식간에 둘 사이에 끈끈한 감정이 생긴 것 같아 좋았습니다.

 

우린 비밀을 공유한 특별한 사이가 된 겁니다.

 

 

 

 

상대방의 단점마저도 예뻐 보이는 것,

그것만큼 확실한 사랑의 신호가 있을까요?

 

그는 창피하다며 털어놓았던 치부가

제 눈에는 그저 안스럽고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심지어 그 순간

이 남자 내 사람이 되겠구나라는 확신이 섰습니다.

 

이토록 엉뚱한 계기로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한 우리는

그날부로 연인 선언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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